소크라테스를 좀 더 알고 싶었을때 지인의 추천을 받고 읽게 된 게 바로 플라톤의 대화편이었습니다. 플라톤을 통해 소크라테스를 가볍게 다가갈 수 있었는데요.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서양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소크라테스의 사상, 그리고 그 안에서 제가 느꼈던 사색들을 조금 나눠보려고 해요.
해설서보다 먼저 원전을 읽어본 이유
사실 소크라테스는 아무런 저서를 남기지 않았잖아요. 그런데도 우리가 지금까지 그의 사상과 존재를 만날 수 있는 건 플라톤 같은 제자들 덕분이죠. 저는 그게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치 성경의 사복음서가 예수님의 행적을 제자들의 기록으로 전해주는 것처럼 말이에요.
예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에베레스트산 영상을 보는 것보다 한 발짝이라도 직접 올라가 보는 게 낫다고요.
인문 고전도 비슷한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해설서만 읽다가 오히려 어려워서 포기하는데, 저는 오히려 원전을 먼저 읽어보는 게 더 잘 맞았어요. 물론 쉽지는 않았죠. 그런데 플라톤의 대화편은 생각보다 굉장히 생생했어요. 딱딱한 철학 이론서라기보다 실제 사람들이 대화하는 느낌이 강했거든요.
소크라테스가 제자들과 질문하고, 반문하고, 장난도 치면서 이야기를 이어가는 모습이 정말 실감났어요. 그리고 다 읽고 난 뒤에 해설을 보니까 그제야 제가 놓쳤던 부분들이 조금씩 보이더라고요. 다만 해설은 아무래도 교과서적인 느낌이 있어서 감동 자체는 원전을 읽을 때가 훨씬 컸던 것 같아요.

너무 빠른 시대 속에서 철학이 더 필요해지는 이유
요즘 제가 트렌드 코리아를 조금씩 읽고 있는데 거기서 ‘롤코 라이프’라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요즘 10대, 20대는 너무 빠른 재미와 자극에 익숙해져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저는 그 부분을 읽으면서 조금 마음이 먹먹했어요.
왜냐하면 불안한 시대일수록 사람은 미래보다 당장의 만족을 더 추구하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경기 침체, 취업 불안, 코로나 이후의 혼란 같은 것들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사람들도 점점 더 즉각적인 즐거움을 찾게 되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새로운 것만 계속 좇다 보면 오히려 마음은 더 불안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 같았어요.
책에서 나온 스프링벅 이야기도 인상 깊었어요. 무리가 한꺼번에 달리다가 결국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는다는 이야기요. 처음에는 먹이를 더 빨리 먹기 위해 달렸지만 나중에는 목적조차 잊고 그냥 군중 심리에 휩쓸려 달리게 된다는 거죠.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도 비슷한 순간이 있는 것 같아요. 왜 이렇게 바쁘게 살아가는지도 모른 채 계속 달리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요.
소크라테스가 청년들을 사랑했던 방식
플라톤의 대화편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소크라테스의 태도였어요.
정말 청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대화 곳곳에서 느껴졌거든요. 제자들의 질문 하나하나를 허투루 넘기지 않고 진지하게 들어주고, 칭찬도 굉장히 많이 하더라고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권위적인 스승의 모습과는 정말 달랐어요.
그래서인지 늘 그의 주변에는 질문하는 젊은이들이 많았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런 모습 때문에 그는 미움을 받게 됩니다. 점점 청년들에게 영향력이 커지자 아테네 권력자들은 소크라테스를 질투했고 결국 ‘청년들을 타락시켰다’, ‘신을 믿지 않는다’는 죄목으로 그를 사형에 처하게 되죠.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 이후였어요. 소크라테스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도망칠 기회가 있었음에도 끝내 독배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너무나 태연하게 제자들과 대화를 이어가요.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오히려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처럼 받아들이는 모습이 정말 놀라웠습니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서 느낀 것들
제가 특히 오래 마음에 남았던 문장이 있어요.
어려운 것은 죽음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비열함을 피하는 것이다.
정말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사람이구나 싶었어요.
요즘도 자기 신념을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그 신념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거든요. 저도 이 부분을 읽으면서 계속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됐어요.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지?
내가 끝까지 붙들고 싶은 신념은 뭘까?
결국 삶이라는 건 단순히 살아남는 게 아니라 무엇을 위해 살아가느냐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혼에 대한 대화가 놀라웠던 이유
파이돈 편에서는 죽음을 앞둔 소크라테스와 제자들이 영혼에 대해 이야기해요. 영혼은 정말 불멸하는가에 대한 질문이죠.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숫자의 속성, 불과 냉기의 비유 같은 걸 사용하면서 굉장히 논리적으로 설명해 나갑니다.
저는 원래 영혼이나 불멸 같은 건 종교적인 믿음의 영역이라고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기원전 400년에 이미 이렇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설명하려 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놀라웠어요. 정말 ‘아 이런 게 서양 철학이구나’ 싶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영혼이 정말 불사하다면 우리는 영원한 세월을 위해 영혼을 돌봐야 한다.
저는 이 문장이 오래 남았어요.
우리는 너무 분주하게 살아가잖아요. 눈에 보이는 성공이나 속도만 따라가다가 정작 영원히 남을 우리의 내면과 영혼은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요.
소크라테스의 육체는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그의 철학은 지금까지도 살아남아 있죠. 저는 그 자체가 그가 했던 말의 증명처럼 느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