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빅 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으니까. 2013년, 미국 국가안보국(NSA)에서 일했던 에드워드 스노든은 영국 가디언지를 통해 미국 정부 기관이 전 세계 사람들의 통화를 도청하고 인터넷 접속 기록까지 수집하고 있다고 폭로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한 작품을 떠올리게 만들었죠. 바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입니다.

“빅 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이 문장은 단순한 소설 속 대사가 아니라, 마치 현실을 향한 경고처럼 느껴졌습니다. 특히 숫자를 거꾸로 뒤집어 보면 『1984』의 원고가 완성된 해인 1948이 된다는 사실까지 생각하면, 조지 오웰이라는 작가가 얼마나 섬뜩한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었는지 새삼 놀라게 됩니다.
가난과 차별 속에서 성장했던 조지 오웰
조지 오웰은 1903년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 벵골 지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인도 아편국에서 일하던 하급 공무원이었고, 집안 형편은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영국으로 돌아와 시작된 학창 시절 역시 가난 때문에 쉽지 않았다고 하죠. 가 8살 때 입학한 세인트 시프리언스 학교는 명문 학교였지만 등록금이 너무 비쌌습니다. 다행히 공부를 잘했던 오웰은 장학생으로 추천받아 학교를 다닐 수 있었지만, 그 안에서의 생활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기숙사 생활을 하던 그는 “공부를 잘해야만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다”는 압박감 속에서 결국 야뇨증까지 앓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밤마다 침대에 실수를 한다는 이유로 교장에게 불려가 체벌을 받았죠. 그때 사용된 것이 무려 상아 손잡이가 달린 말채찍이었다고 합니다. 반면 부잣집 아이들은 특별 대우를 받았습니다. 승마 수업을 듣고, 간식을 먹고, 어떤 경우에도 체벌을 당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차별 속에서 어린 오웰은 스스로를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저주받았어. 나는 가난했고 나약했으며 못생겼고 인기도 없었다.
아무도 놀아주지 않는 외톨이였던 그는 혼자 상상 속 인물들을 만들고 그들과 대화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상상들을 글로 옮기기 시작했죠.
오웰이 글을 쓰게 된 이유
오웰은 자신에게 “불쾌한 사실을 직시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실패한 자신을 글 속에서 다시 되찾곤 했죠. 그가 어린 시절부터 직시했던 불쾌한 현실은 단순한 가난이 아니었습니다. 학교라는 공간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가난한 학생 한 명 정도는 희생되어도 된다는 분위기, 즉 전체주의적인 분위기였습니다. 이런 현실을 경험하며 성장한 오웰의 글쓰기는 자연스럽게 권력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방향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살아가던 시대 역시 2차 세계대전, 스페인 내전, 나치즘과 스탈린주의가 극성을 부리던 전체주의의 시대였죠.
오웰은 이런 시대를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침몰하는 배 위에 있다면, 당신의 생각은 오직 침몰하는 배에 관한 것이 된다.
즉, 자신이 정치적인 글쓰기를 하게 된 이유는 그 시대 자체가 이미 침몰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들고자 했던 작가
오웰은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자신이 믿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글이 단순한 정치 선전이나 딱딱한 기사처럼 보이지 않기를 원했죠. 그래서 그는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들겠다”고 마음먹습니다.
밤마다 말채찍에 맞던 가난한 소년이, 자신이 겪은 불쾌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문학으로 승화시키겠다고 결심한 순간. 그때 조지 오웰은 더 이상 나약한 아이가 아니라, 문학의 힘을 믿는 작가로 다시 태어났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후 그는 여러 작품을 발표했고, 특히 <동물농장> 을 통해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하지만 성공 이후 폐결핵이 악화되면서 각혈까지 하게 되었죠. 그럼에도 그는 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시 펜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써 내려간 작품이 바로 <1984> 였습니다.
‘1984’ 속 세계와 빅 브라더
소설 속 세계는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라는 세 개의 거대한 국가가 서로 대치하고 있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절대 권력의 상징인 빅 브라더는 오세아니아를 지배합니다. 이 사회는 텔레스크린이라는 기계를 통해 사람들의 행동과 말까지 감시합니다. 카페, 식당, 가정집 어디에나 설치된 이 장치는 시민들의 사생활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죠. 심지어 부부관계조차 감시하며, 단순한 쾌락을 위한 사랑까지 금지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회 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물이 바로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입니다.
윈스턴은 외부 당원으로, 진리부에서 일합니다. 그의 업무는 과거 기록을 수정하는 것입니다. 즉, 역사 자체를 당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작하는 일이죠.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이 슬로건은 그 사회를 가장 잘 보여주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자아를 잃어버린 사회
사람들이 남긴 기록을 조작하는 사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제대로 알 수 없게 됩니다.
윈스턴은 그런 사회 속에서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해 몰래 일기를 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일기장 첫 장에 이렇게 적죠.
1984년 4월 4일.
하지만 곧바로 그는 무력감에 빠집니다. 정말 올해가 1984년이 맞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정보를 독점한 당이 진실을 조작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1984’ 라는 숫자는 단순한 특정 연도가 아니라, 거대한 권력 속에서 자아를 상실한 채 살아가는 인간의 시간을 의미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이 시대에도 적용될 수 있는 숫자일지도 모릅니다. 연예인, 스포츠, 드라마, 게임 같은 자극적인 정보에 지나치게 몰입한 채 정작 자신의 삶과 현실은 외면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모습 역시 또 다른 형태의 ‘1984’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웰이 말한 전체주의
많은 사람들이 ‘1984’를 단순한 반공주의 소설로 소개하지만, 오웰은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밝혔던 인물입니다. 그가 비판한 것은 사회주의 자체가 아니라, 그 이름만 빌려 인간을 억압하는 변질된 전체주의였습니다. 그리고 오웰이 말한 전체주의는 특정 국가만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전체주의는 가능한 한 당신을 외부 세계로부터 고립시키며, 비교 기준이 없는 인공의 우주 속에 가두는 것이다.
즉, 개인의 사고와 감정을 군중 속에 가둬버리는 모든 시스템을 그는 전체주의라고 본 것입니다.
“무지는 힘이다”
소설 속 프롤 계층은 거의 교육을 받지 못합니다. 먹고살기도 바쁘기 때문에 정치나 사회에 관심을 가질 여유도 없습니다.
당은 그런 사람들에게 값싼 오락과 선정적인 기사들을 제공하며 계속 무지한 상태로 머물게 하죠.
그리고 그 사회의 슬로건 중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무지는 힘이다.
왜냐하면 권력을 유지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 바로 대중의 무지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지금 나는 스스로 질문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저 흘러가는 정보만 소비하며 살아가는 사람인가?
지금도 ‘1984’ 를 읽어야 하는 이유
윈스턴 스미스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오웰 역시 평생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차별과 가난 속에서도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고, 죽기 직전까지 인간의 자유와 사고에 대해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질문이 바로 ‘1984’ 였던 것이죠. 이 책은 단순히 암울한 미래를 보여주는 소설이 아닙니다.
당신은 지금 스스로 생각하며 살고 있는가?
그 질문을 독자에게 끝까지 던지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