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식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은 뭘까?’ 열심히 살아왔는데도 자꾸 공허하고, 남의 기준에 맞춰 살아온 것 같은 순간이 있습니다. 이번 글은 니체의 ‘자기 창조’와 카뮈의 ‘부조리 철학’을 바탕으로, 왜 우리는 스스로를 잃어버리게 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시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풀어볼려고 합니다.
니체는 왜 “너 자신이 되어라”라고 말했을까
우리는 흔히 “나답게 살고 싶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막상 진짜 나다운 삶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쉽게 답하지 못합니다. 좋아하는 것도 모르겠고,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도 점점 흐려질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쩌면 너무 오랫동안 남의 기준에 맞춰 살아왔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부모의 기대, 사회의 기준, 주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원하는 삶’보다 ‘남들이 원하는 삶’에 익숙해지게 됩니다.
니체는 이런 인간에게 아주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너는 너 자신이 되어야 한다.” 중요한 건 여기서 ‘되어야 한다’라는 표현입니다. 니체는 인간이 처음부터 완성된 존재라고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인간은 계속해서 스스로를 만들어 가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진짜 나’를 어딘가 숨어 있는 보물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언젠가 발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니체는 다르게 말합니다. 나는 발견하는 존재가 아니라 창조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 관점은 생각보다 큰 위로를 줍니다. 왜냐하면 ‘정답 같은 나’를 반드시 찾아야 하는 부담에서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도, 내가 원하는 삶도 이미 정해진 답안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경험과 선택 속에서 계속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모르는 이유
요즘 많은 사람들이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합니다. 사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효율과 성과 중심의 삶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보다 잘해야 하는 일을 우선했고,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을 먼저 선택해왔습니다.
그렇게 살아오면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나는 왜 이렇게 지쳤을까?” 문제는 열심히 살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방향이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남을 위한 삶’이었을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
니체는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시선을 보여줍니다. 사람마다 같은 활동도 전혀 다르게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음악을 들으며 위로를 받고,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며 살아 있음을 느끼고, 또 어떤 사람은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에너지를 얻습니다. 중요한 건 활동의 이름이 아니라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경험하느냐입니다. 결국 ‘나다운 삶’은 이미 정해진 카테고리 속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의미를 부여하며 만들어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카뮈가 말한 ‘낯설음’의 의미
카뮈는 인간의 삶을 ‘부조리’하다고 보았습니다.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지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열심히 살아도 이유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고, 행복조차 언제나 불안정합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계속 살아갑니다. 카뮈는 바로 그 지점을 중요하게 바라봤습니다. 특히 그는 인간이 가끔 세상을 낯설게 느끼는 순간에 주목했습니다. 늘 걷던 길이 갑자기 이상하게 느껴질 때, 익숙했던 사람이 갑자기 낯설게 보일 때, 혹은 스스로조차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그런 감정을 불안하게 생각합니다. 빨리 해결하려고 하거나 무시해버립니다. 하지만 카뮈는 오히려 그런 순간이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익숙한 세계가 깨지는 순간, 우리는 기존의 방식대로만 살아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낯설음 속에서 새로운 시선과 새로운 가능성이 시작됩니다.
너무 완벽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카뮈 철학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는 인간 존재를 너무 무겁게 바라보지 말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의무를 부여합니다.
-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 반드시 행복해야 한다
- 반드시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
- 반드시 불안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이런 강박은 오히려 삶을 더 경직되게 만듭니다. 카뮈는 인간이 완벽하게 설명될 수 없는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자기 자신을 조금 가볍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실수해도 괜찮고, 흔들려도 괜찮고, 아직 답을 찾지 못했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여유가 생길 때 사람은 더 창의적으로 움직일 수 있고, 더 유연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결국 삶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니체와 카뮈의 철학은 결국 비슷한 방향을 가리킵니다. 인간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정답 같은 인생은 없고, 완벽한 자아도 없습니다. 다만 오늘의 경험과 선택 속에서 조금씩 나를 만들어갈 뿐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중요한 건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뭘까?”라는 질문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조금 더 살아 있다고 느끼는 방향으로 움직여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삶은 발견보다 창조에 가까운 일이니까요.
니체는 우리에게 자기 자신을 발견하라고 말하기보다 스스로를 창조하라고 말합니다. 카뮈는 삶이 완벽하게 이해되지 않아도, 그 부조리 속에서 계속 살아가는 인간의 태도를 이야기합니다.
결국 나다운 삶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된 답처럼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씩 선택하고, 경험하고, 실패하고, 다시 바라보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나를 잘 모르겠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늦었다는 뜻이 아니라 이제부터 나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